저는 코딩이나 프로그래밍 언어를 전혀 다룰 줄 모릅니다.
지금 보고 계신 이 작은 홈페이지도 GPT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어요.
그동안 판매했던 수 많은 커피들을 정리해주는 아카이브를 만들었고, 원두 카드에 사용할 이미지 제작도 하며, 로스팅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분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원가와 손익을 계산하거나 교육 자료를 정리하는 데에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시간을 한참 들여 직접 공부하거나 외부 업체에 의뢰해야 할 수 있었던 일들인데, 지금은 AI의 도움을 받아 혼자서도 빠른 시간에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물론 AI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준 것은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결과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수정하는 과정을 머리를 쥐어뜯으며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앞으로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 남게 될까?’
바리스타나 로스터처럼 사람이 직접 수행하던 업무의 상당 부분도 점점 기계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바리스타가 만든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질감의 우유 스티밍부터 여러 가지 추출 변수들을 제어하는 에스프레소 머신, 설정된 프로파일에 따라 화력과 배기를 조절하는 로스팅 머신 등 이미 생각보다 많은 기술이 상용화되어 있습니다.
아직은 숙련된 사람을 고용하는 게 더 싸면서 전문적이고, 장비의 가격이나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빠르게 보급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AI를 사용했을 때는 정말 많이 답답했습니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헛소리를 하거나, 앞서 나눴던 대화의 맥락을 잊어버리는 일도 부지기수였습니다.
AI가 로스팅에 대해서 확신에 가득 찬 대답을 하길래 그대로 해봤다가 결과가 엉망이 되어 커피를 몇 번이나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AI 모델의 성능이 발전하면서 어느 날부터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체감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는 것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며 토론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가끔씩 틀린 정보를 자신 있게 이야기하거나, 실제 현장에서는 적용하기 어려운 방법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다만 예전과는 달리 그 오류를 지적하면서 추가적인 질문을 하면, 스스로 재검토하면서 더 나은 답변을 찾아가는 경우가 부쩍 늘었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검색하고 확인하는 도구에서,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확장하는 단계까지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게 불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오히려 요즘은 제가 너무 AI에 의존하고 있나 싶을 때도 있지만, 그동안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해결해가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앞으로는 어떤 일들을 더 해볼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시간이 더 지나서 AI와 기계가 사람의 일에서 더 많은 부분들을 대신해줄 수 있게 되었을 때,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실 답은 뻔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시하고, 결과를 확인하고, 조절하는 일입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죠.
무엇이 올바른 결과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로스팅 머신이 설정된 프로파일을 정확하게 재현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커피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계는 주어진 조건을 정밀하게 수행할 수 있지만, 그 조건이 우리가 원하는 맛을 만들어내는지는 별개의 문제니까요.
그리고 여기에서 센서리(Sensory). 즉, 감각적 판단의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센서리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고 맛있다거나 맛없다고 판단하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커피에서 어떤 향미가 나타나는지, 산미와 단맛은 어떤 균형을 이루는지처럼 주어진 상황에서 긍정과 부정적인 요소들을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은 감각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현재의 결과가 왜 나타났는지 추론하고,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과정까지 이어집니다.
AI가 아무리 그럴듯한 로스팅 프로파일을 제안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판단할 수 없다면 그 제안을 제대로 활용할 수도 없겠죠.
물론 언젠가는 기계가 향기 성분을 분석하고, 사람의 관능 평가 결과를 예측하며, 최적의 로스팅이나 추출 조건까지 제안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 결과들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지, 그리고 실제로 원하는 값에 도달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여전히 중요할 것 이구요.
기술의 발전이 어떤 사람에게는 위기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것이 나쁜 변화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반복적인 작업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줄어든다면,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을 꺼에요.
그래서 저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바리스타와 로스터에게 요구되는 센서리 능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좋은 장비를 사용하는 것과 좋은 커피를 만드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닐뿐더러, 단순히 버튼을 누르고 기계를 조작하는 기술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한 전문성을 인정받기 어려워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